아트뮤지엄
작가별 검색장르별 검색미술계 인명록
 
HOME > 아트뮤지엄 > 작가
작가별 검색
작가별로 검색이 가능한 아트뮤지엄 입니다.
권희연
전통의 맥을 찾아서 권희연 ‘상상된 자연’ | 2011년 06월 09일 13시 38분
-전통의 맥을 찾아서 권희연 ‘상상된 자연’
박영택/미술평론, 경기대 교수
 
 
권희연의 꽃그림은 단조롭고 기계적인 사물의 묘사, 상투적인 꽃의 무모한 그리기라는 선에서 비껴나 구체적인 실존의 장과 연결된 하나의 꽃이라는 대상에 대한 서정을 가시화시킨다.
I. 권희연은 꽃을 그렸다. 황토색을 바른 밑바탕 위에 흰 꽃을 정성스레 그려놓았다. 자연속의 꽃들이 그 모태로부터 떨어져 나와 전경에 가득하다. 가는 줄기와 여린 꽃잎들이 소담스럽고 부드럽게, 꿈틀댄다. 흰색의 꽃잎은 화려함보다는 안온하고 잔잔하며 무엇보다도 소박한 미감을 주는 편이다. 작가는 아마도 그 꽃들을 통해 자신의 미감을 전달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화면의 중심부에 설정된 꽃들은 정교한 채색으로 그려진 반면 뒤로 멀어져가는 배경은 실루엣으로 흐릿한 나무들이 빈 가지들을 드리우고 있다. 그것은 새벽 숲의 표정일수도 있고 안개 자욱한 날 혹은 비가 그치고 물안개 퍼져 오르는 그런 날의 풍경 일 수도 있다. 아니면 태양이 이제 막 스러진 순간의 마지막 여운 같은 그런 일몰의 시간대에 자리한 나무와 숲을 연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이 화면을 보면서 그런 풍경을 상상할 수 있다.
작가는 우리로 하여금 다양한 장면을 상상하도록 권유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이 그림은 꽃을 보여주기보다는 어떤 공간 속에 자리한 꽃에 대한 상상을 자극하는 그림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그 꽃은 개별자로 존재하기보다는 항상 그것이 자리한 실존의 공간을 배경으로 해서 출몰하고 있는 것이다. 풍경과 꽃이 공존하는 그런 그림이다. 그 둘의 세계가 결코 분리되거나 차별화 될 수 없음을 은연중 알려준다. 자연과의 유기적 연관성 속에 자리한 식물, 꽃의 세계 말이다.
아마도 보는 이들은 꽃이 있는 숲이나 산 속을 자연스레 편안하게 떠올려보고 심리적 안정을 얻게 되거나 아름다움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작가의 미에 대한 인식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의 그림에 대한 생각의 틀이다. 그림의 형식과 내용을 결정하는 이 미감과 미에 대한 경향성은 결국 동양화에 대한 이해의 단충을 결정한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꽃그림과 같은 선에서 나온다는 생각이다.
II. 작가는 산속을 가다가 혹은 숲속을 거닐다 우연히 아름답고 청초한 흰 꽃을 발견했다. 자연스레 자신의 시선은 그 꽃에 가 머물 것이다. 배경을 이룬 무수한 잡풀과 나무들, 주변의 공간은 그 꽃의 배경으로 홀연히 사라지고 흐려진다. 몸을 구부리고 가까이 근접해 그려낸 이 꽃들은 결국 자연에서 일정하게 선택하고 가려낸 부분들이고 그것을 분절시킨 것이다. 문맥에서 이탈된 꽃들은 본래의 풍경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작가는 배경으로 그 자연풍경을 실루엣으로 만들고 하나의 막처럼 보여준다. 그 같은 무대를 배경으로 꽃은 출현하고 있다.
자연과 그 자연에서 추출된 꽃의 관계가 새롭게 재생된 셈이다. 그러니까 권희연의 꽃그림은 늘상 배경으로 자연의 편린을 제공해주고 여전히 변함없이 그곳에 그렇게 존재하는 숲을 병풍처럼 펼쳐 보여준다. 비로서 그 배경을 뒤로 하고 꽃들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권희연의 꽃그림은 꽃을 지시적으로, 사실적으로 묘사해 마감시키기보다는 그것을 발견하고 그를 보고 아릅답다고 느끼는 자신의 감정의 장면을 연출, 상상해 보여준다는 것이다. 단조롭고 기계적인 사물의 묘사, 상투적인 꽃의 무모한 그리기라는 선에서 비껴나 구체적인 실존의 장과 연결된 하나의 꽃이라는 대상에 대한 서정을 가시화 시키는 편이다.
또 하나는 자연과 꽃의 관계설정에 대한 배려를 고려하는 그림이다. 자연과 그 자연의 한 부분을 이루는 꽃은 거시적이고 미시적인 차원이지만 둘 모두 그 안에 온전한 하나의 우주를 이루고 있다.
동양화에 있어 여전히 꽃은 그림의 소재로, 그림을 그리게 하는 질긴 동인으로 존재한다. 하나의 꽃은 단순히 식물로서의 꽃이라는 개별적 존재에 머물지 않고 그로부터 벗어나 아주멀리 달아나 하나의 우주, 실존의 공간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느낀다. 그것이 꽃을 그리는 이유이리라. 한 송이 꽃에서 우주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자연의 이치와 섭리를 체험해보는 것이다.
III. 식물성의 세계는 고요하고 정지되어 있으며 틈을 메꾼다. 그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공간에 침묵하고 수직으로 뻗어 내려갈 뿐이고 주변의 공간위로 부풀어 오른다. 지표가 경계를 이루고 그 위와 아래로 세계는 나뉜다.
권희연의 꽃그림은 몇 개의 층위를 지닌 화면을 배경으로 하얀 꽃잎을 지닌 몇 개의 꽃들이 군집을 이루어 전경을 만든다. 자연스레 물러난 후경은 단색으로 조율되어 하나의 배경, 막, 풍경을 만든다.
그것은 구체적인 풍경이 아님에도 넓은 풍경을 만든다. 실재의 자연세계에서 기호들은 차용해 독립적인 심상을 화면을 만들고 결국 그녀의 그림은 자신의 자연에 대한 선택의 이미지화인 셈이다.
그 풍경은 전경에 위치한 꽃들이 아닌 나무의 세계다. 수직으로 직립한 거대한 나무들 혹은 쭉쭉 뻗은 발기한 나무들이다. 무성한 가지와 무수한 이파리를 지닌, 제 몸으로 그것들을 길러내 공간으로 확산시키는 발산의 힘을 지닌 나무들이다. 남성성으로서의 나무들 앞에 백색으로 마감된 이 연약한 꽃들은 섬세하고 여리고 하늘거리며 여럿이 함께 모여 스스로 풍경을 이룬다. 이 같은 상반된 두 개의 풍경, 서로 다른 상들이 하나의 화면에서 공존한다. 그러면서 나름의 조화를 이루며 산다. 하긴 그것이 자연(自然)아닌가?
자연 전체를 조망시키는 이 3면으로 나눠진 화면은 색조를 달리하면서 분절되어 보인다. 가운데 면에서 주로 꽃들이 서식하고 그 꽃은 화면의 단면에서 중심을 향해 배치된다. 화면은 서로가 서로를 배경으로 전경으로 만들며 온전한 하나의 식물성의 세계를 이룬다. 나무와 꽃은, 단색과 칼라, 수직과 수평, 딱딱함과 말랑말랑함, 건조함과 부드러움, 고체성과 액체성 등등이 서로 파장을 일으킨다. 몇 가지 층위로 엇갈린 장면들, 화면들이 서로 포개지고 접혀지면서 그것은 다성의 공간, 중층의 공간을 만든다. 그 풍경 속에 꽃들이 존재한다. 권희연식 꽃과 풍경이다.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4길 17(경운동 47-1 건국빌딩) 본관 201호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전화번호:02-514-9237~8 팩스:02-514-9293
사업자등록번호:211-82-17368 대표:김영석 통신판매신고번호:제 2011-서울강남-01309 호